: 외고에서부터 대학까지

나는 외고를 나왔다.

외고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친구'.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학교에서 조금 논다는(?) 조금 껄렁껄렁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 친구들을 볼 때마다 '껄렁껄렁한 친구들이 고등학교에는 더 많을 텐데...'라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껄렁껄렁한 아이들이 비교적 적은 특목고에 진학하고 싶었다.

천재들이 많다는 과학고를 가기에는 수학적 능력이 딸리는 것 같았고 시험 봐서 들어가는 자사고에 들어가기에는 선행을 하지 않아 입학시험에 떨어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다행히도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영어를 비롯한 여러 과목의 내신을 잘 받았고 여러 교내/교외 활동을 많이 해놔서 운 좋게 외고에 진학하게 되었다.

외고에서 나는 공부보다는 '친구'에 초점을 맞췄던 것 같다. 대학은 아무 때나 갈 수 있지만 고등학교 시절은 다시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시간이니까 친구들과 많은 추억을 쌓고 싶었다. 뭐하고 놀았는지 생각해 보면 친구들과 오목도 두고, 농구도 하고, 수다도 떨며 학교에서 소소하게 놀았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수시로 대학을 갈 생각을 못 했다.

'나는 친구들에 비해 영어 실력이 떨어진다.

-> 영어 관련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힘들다.

-> 외고에는 영어 관련 활동들이 많다.

-> 나는 외고에서 스펙을 만들기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어쩌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정시와 재수를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바보, 바보, 바보... 글쓰기 등 다른 활동으로 대학을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어느덧 고등학교 3년의 세월이 지나고 나는 재수생의 길을 걷게 되었고 여러 우여곡절 끝에 인 서울 대학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대학보다는 아래에 있는 대학이었다. 물론 내가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면 큰 아쉬움이 남았다.

: 공무원 준비

대학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은 날, 아빠께서는 안정적인 공무원을 추천하셨고, 나 또한 학벌을 안 보는 공무원이 직업으로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공무원을 했느냐? 아니다. ㅎㅎ 대학교 1학년 생활을 즐기랴, 편입준비를 하랴, 토익 준비하랴,,, 물론 잠도 많이 잤다.

이렇게 대학교 2년의 세월을 흘려보낸 뒤, 3학년 때부터 대학교를 다니면서 법원 직 공무원을 준비했다. 법원 직 공무원은 8과목을 시험 보는데 법 과목만 5개여서 강의를 정말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강의만 듣다 보니 점수는 안 나오고, 시험일을 다가오고,,, 그런데 나는 단기합격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5과목만 시험 보는 일반 행정직 공무원에 도전하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학원을 다니며 공무원 준비를 하였다. 처음 몇 달은 쉬는 시간도 없이 정말 열심히 하였다. '고등학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도 갈 수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하였던 것 같다. 그런데 코로나에 걸린 다음이 문제였다. 코로나에 걸린 후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수액도 맞아보고 밥도 잘 먹으며 회복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런데 코로나가 완치된 후에 다른 곳이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정말 절망적인 나날을 보냈다.

 

의자에는 앉아있지만 공부는 할 수 없는 나날들이 계속되자 이렇게 하다가는 시간만 낭비하는 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알바천국에서 일자리를 찾아보았다. 서빙, 행정업무, 전화받는 일... 정말 여러 가지 직업들이 많았다. 그 중 눈에 띄는 일이 있었으니,,, 바로 '한솔교육'이었다.

: 한솔교육 선생님이 되다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가 "어른 상대하는 것보다 아이들을 상대하는 게 더 나아. 아이들은 그래도 순수하니까."라고 말해준 것이 생각났다. 나도 성선설을 어느 정도 믿고 있어 착한 아이들이 많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아이들이 가식이 없이 매우 솔직해서 가끔씩 상처 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지만 말이다.

대학 때 인물사진을 보고 어떤 사람일 것 같은지 첫인상에 대해 코멘트를 달아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같이 수업 듣는 학생들이 내 얼굴 사진을 보고 "블로그를 할 것 같다."," 아이들 보고 '여기 보세요~'를 잘 할 것 같다."라고 써주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평소에 아이들과 노는 것을 좋아했다. (사촌동생과 팽이를 가지고 놀 때 내가 더 신나한 적 도 있다.ㅎㅎ) 또, 예전부터 유아 교구에 관심이 있었다. 유아를 가르치는 교구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디자인, 교육철학, 안전성 등 여러 가지 지식과 철학이 집합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성인을 가르칠 때도 물론 교육방법론이 필요하지만 교육방법론보다는 지식을 더 많이 알아햐한다면,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가르치려는 지식보다는 교육방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아를 가르치는 교구 및 태도를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오다니... 결국 나는 결단을 내렸다. 공무원 준비를 접고 한솔교육 선생님이 되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과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고 방문 교사를 하고 남는 시간에 작가로서 글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엄마, 아빠와 2번의 상담을 한 후, 학원에 가서 원장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자리를 뺐다. 원장 선생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든지 매일 영어를 30분씩 하라는 말씀과 함께 학습지 방문 교사는 힘들다고 언제든지 다시 오라고 말씀해 주셨다. 힘들 때 원장 선생님 덕분에 힘을 얻고는 했는데 이제 다시 못한다니 마음이 조금 이상했다.

학원을 끊고 한솔교육에 전화를 한 뒤 그다음 날 면접을 보았다. 기질검사를 하고 지점장님께 여러 설명을 들었다. 그렇게 나는 한솔교육에서 학습지 방문 교사가 되었다.

한솔교육에서는 한솔교육 선생님을 '신나쌤'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아이들을 '한솔이'라고 부른다.

앞으로 한솔교육 선생님으로서의 생활에 대해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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